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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저자 : 김성수 목사
출판사 : 부흥과 개혁사

지난 3월 6일 갑자기 소천하신 김성수 목사님의 대표적인 역작 가운데 하나인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를

목사님의 소천을 추모하며 소개를 합니다. 아래 내용은 그 책의 서문과 김성수 목사님을 인터뷰했던 내용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과연 자신의 인생은 만족한 인생이었노라고 고백하며 이 땅을 떠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푸쉬킨처럼 은연중에 삶은 우리를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실제로 자신들은 삶에게 그렇게 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삶이라 표현을 했지만 사람들이 정작 섭섭해 하는 것은 그 삶을 주관하고 있는 어떤 힘 있는 존재에 대한 투정일 겝니다. 인생을 앞에 두고 단지 허둥대기만 했던 무능하고 가련한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 대학 시절은 그야말로 삶에 대한 공상으로 웃었다 울었다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인생은 무엇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나는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이러한 부모와 이러한 가정과 이러한 나라에 태어나게 된 것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존재로부터 주어진 이 인생의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하며, 종국에는 이 땅을 떠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말 깜깜한 동굴을 지나는 듯 했습니다. 미국의 어느 조종사가 정리를 했다는 머피의 법칙은 꼭 나를 위하여 만들어진 법칙처럼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의 희망과 상상과는 늘 반대 방향으로 자리를 하는 것 같았고 저는 그 때마다 누군가 나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삶이 나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마에 첫 주름이 생겨날 즈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저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프랑스 시인의 고백처럼 인생에 대한 신뢰와 동의가 제 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삶은 한 번도 나를 속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지요.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든 이루어지지 않았든 내가 지나간 그 시간은 분명 나에게 유익이었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어려움은 어려움으로 나의 인격적 성숙에 기여를 했고, 기쁨과 흥분은 그 나름대로 나의 인생의 맛깔스러움을 보태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후에도 삶의 이정표가 좀 더 명확했으면 하는 바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때마다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그 큰 손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이끄심에 전적인 동의를 하게 되었지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경륜하시는 창조주이시면서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의 벗이며 나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어둡고 추악한 세상 속에서도 그렇게 하나님의 통치에 순응하며 동의하고 그 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 부릅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잠시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이 땅에서 억지스러운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소망은 이곳이 아닌 하늘에 있기에 얼마든지 견뎌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게 해 달라고 가슴 깊은 진심으로 기도를 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는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십자가의 원리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의 저주의 나무 막대기에서 보여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과 나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나를 비우고 나를 죽여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이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입니다.

 

이 세상의 삶의 원리는 힘의 원리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 언제든지 남을 밟을 수 있고 하나님마저도 어르고 달래서 나를 돕는 힘으로 동원해 버리는 그런 원리이지요. 이 둘은 언제나 충돌을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땅에서 순조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대시대의 나그네와 이방인은 사회법 밖의 외인들이었습니다. 누가 괴롭혀도, 심지어 목숨을 위협해도 그들을 지켜줄 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땅에서 바로 그러한 나그네요 이방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창세전에 택함을 받습니다. 이 우주가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그 생명책을 근거로 우주와 역사를 창조하신 것이며 여전히 창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의 지킴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식을 자식답게 만드시기 위해 우리의 삶에 깊이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반성문도 쓰게 하시고 때로는 회초리를 대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를 번쩍 들어 올려주시며 ‘잘 했다’ 칭찬해 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우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다정히 보듬어 안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 인생이 이만큼 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삶이 우리를 속이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삶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로 정확하게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지금 칠흑 같은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계신가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우리의 삶은 정직하고 정확하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혹 자신이 저질러 놓은 엄청난 죄 때문에 하늘나라 백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자신이 삶에게 속았다고 생각하세요?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더럽고 추악한 존재가 맞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너무나 쉽게 자신의 본 모습을 망각해 버리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떠난 자들의 추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우리에게 직접 경험케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지만 그 지저분한 놀라움을 추스르고 더 이상 그러한 어두움과 더러움이 없는 새 몸과 새 나라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시 우리를 향한 정직한 삶의 기여입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우리 인생을 겪으면서 영원한 집인 하늘나라로 한발 한발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 하늘의 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의 성도다움을 훈련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이 땅의 무대 세트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더러운 죄를 반복하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며 왜 나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한 가를 배우는 것이고, 허무(虛無)를 향해 돌진하는 역사를 바라보며 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쌓아놓은 물질과 공간은 불 타버릴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배우는 것이고,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결국 어떻게 그들의 최후를 맞는가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만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들의 더러움이 폭로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뜻에 동의하는 자들의 행복이 드러나는 한시적인 역사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열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것이 바로 역사와 물질과 공간의 한시적 역할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나라를 가르치고 하늘의 소망을 공고히 하는 사명을 가진 교회가 병이나 고치고 사업의 흥왕이나 빌어주고 자녀들의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무당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린 시절 저녁 여섯시만 되면 어김없이 울려오는 애국가에 발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마음에도 없는 경의를 표하던 기억이 납니다. 예배당에 앉아 혹시 그런 습관적이며 형식적인 예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는지요?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는 것이며, 어디를 목적지로 삼아야 하는 것인지 정말 여러분은 아십니까?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저 어떤 힘 있는 존재의 힘을 빌려 자신의 소원이나 이루고 문제해결이나 하는 무속신앙의 모습과 섞여서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의 말처럼 한국의 기독교는 이제 비빔밥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기복교가 되었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정설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그처럼 구복(求福)자가 어떤 큰 힘을 가진 존재에게 힘을 빌려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샤먼이라는 무당을 중재자로 세우고 그를 통해 치성을 드리는 것은 샤머니즘이라 불러야 옳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목사라는 샤먼을 중재자로 세우고 하나님이라는 그저 힘만 센 비인격적인 어떤 존재를 달래고 닦달해서 복이나 받아내려고 하는 그런 무당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건 기독교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게 되면 첫 번째로 찾아오는 것이 ‘고난’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수많은 샤먼들은 자신의 세(勢)를 늘리고 과시하기 위해 그 ‘고난’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어줍지 않은 ‘복(福)’으로 포장을 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청중이 듣기 싫은 소리는 안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교회의 강대상에서 ‘죄’와 ‘회개’와 ‘고난’과 ‘심판’ 그리고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삶’ 같은 주제들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들이 ‘만사형통’ ‘질병치유’ ‘신비한 체험’같은 것들입니다. 과학적 논리로 무장한 현대인들은 과학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 신기한 현상 앞에서 맥을 못 추고 넘어갑니다. 물질주의, 실용주의, 역사 낙관주의, 성공주의, 소유 지향성, 맘모니즘에 젖은 현대인들은 만사형통의 당근 앞에서 허리를 조아리고 연신 ‘주옵소서’를 외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아담의 자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의 장중(掌中)으로 회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보겠다는 타락한 인간들의 수많은 시도들과 열매들이 참으로 부질없음을 이 역사 속에서 올바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자신의 추악함을 직시할 수 있도록 실수와 실패와 더러운 범죄도 때로 허락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인간은 절대 영원한 왕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시기 위해 질병도 허락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참 행복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게 만드시기 위해 이 옛 하늘과 옛 땅이라는 물질과 공간에 정나미가 떨어지게도 만드십니다. 그러한 사건과 상황과 정황들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만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숙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자기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타락한 ‘자기’가 부인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자기를 왕처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다른 이들을 밟아왔던 옛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과 다른 이웃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다 가신 그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가 진정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에게 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이 땅에서 배우는 것이고 그렇게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의 삶을 기꺼이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성경은 ‘천국’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렇게 자신의 손해로 남의 유익을 챙기는 삶이 과연 만사형통이요 일사천리로 나타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치성(致誠)을 드려 강청(强請)하기만 하면 모든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 기독교라면 그 탐욕스런 기도 속에서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자가의 삶을 달게 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나날 수 가 있겠습니까?

부디 이 책(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목적지가 올바로 제시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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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펴낸 김성수 서머나교회 목사 인터뷰

 

만사형통·복만 강조하는 교회
치성·강청만으로 단련된 교인
각성 요구하며 신앙 본질 설명

 

“언젠가부터 교회 강단에서 ‘죄’ ‘회개’ ‘고난’ ‘심판’ ‘자기 부인’ ‘십자가의 삶’ 등에 대한 설교가 사라졌습니다. 목회자들이 현실과 타협하고 교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하늘의 집보다는, 성도들의 성화를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이 땅의 무대 세트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복음성가 가수인 남가주 서머나교회 김성수 담임목사가 세속주의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무기력에 빠져 있는 교회들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대신 토로했다. 최근 나온 첫 저서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프레이즈 퍼블리싱 간)를 통해서다.

 

이 책은 한달여 만에 한국에서 1판 1쇄가 매진되었을 정도로 서점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려 703쪽에 달하는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잃어버리기 쉬운 신앙의 본질을 ‘적확’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 믿음의 얕은 물가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깊은 바다로 나가기 원하는 이들을 위한 필독서라 할 수 있다. 곁에 두고 그때그때 궁금한 테마를 찾아보면 좋은 이 책은 기복주의, 만사형통주의, 신비주의, 실용주의 등에 물들어 무속신앙화 한 교회를 보고 애통해 하는 김 목사의 일갈이다.

 

“우리는 더러운 죄를 반복하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며 왜 내게 구원자가 필요한지, 허무를 향해 달려가는 역사 속에서 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쌓아놓은 물질과 공간은 불타버릴 수밖에 없는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이 어떤 최후를 맞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개혁주의 신앙입니다. 특정 교단이 아닌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을 설명했습니다.”

 

김 목사는 예배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가르쳤던 내용을 토대로 책을 저술했으며, 앞으로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다루는 책들을 계속 낼 계획이다.

 

“어느 신학자의 말처럼 한국 기독교는 비빔밥 종교가 되어 버렸다. 기독교가 ‘기복교’가 되어 버렸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정설이 된 것 같다”고 개탄하는 그는 “이제 크리스천들은 절대 파워를 지닌 어떤 비인격적 존재를 달래고 닦달해 자기 소원이나 이루고 문제해결이나 받는 무속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저자는 시종일관 독자에게 묻는다. “과연 예수는 병이나 고쳐주고 부자나 만들어 주고 기적이나 일으켜 주시려고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를 지신 것인가”라고. 또 헌금과 십일조, 예배, 방언, 죽음 등 기독교인들이 잘못 이해하기 쉬운 주제들도 성경을 토대로 깊이 있게 풀이했다.

 

책에는 김 목사가 자신의 중생 체험을 담아 작곡, 작사한 ‘집으로 가자’ 등 인기곡들과 진솔한 간증이 담긴 CD가 보너스로 들어 있다. 번잡한 삶을 사는 독자들에게 참된 쉼을 선사하는, 따스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간증을 통해 김 목사는 어떻게 대학시절까지 교회를 다니다 회의에 빠져 다양한 종교를 섭렵하는 먼 길을 돌아 자신을 기다리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우물 같이 깊은 음성으로 들려준다. 1988년 KBS 대학 가요제에서 ‘비 오던 날’이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은 화려한 경력을 지닌 그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복음성가 가수다. 서울대학교와 아주사퍼시픽 신학교를 졸업하고 2004년 남가주 서머나 교회(3300 W. Adams Bl., LA)를 개척,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다.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는 각 크리스천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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